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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죽었는지 가서 보고 오렴

사랑이 죽었는지 가서 보고 오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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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준 저  문학동네 2024년 04월 15일

“당신에게 부딪혀 이마가 깨져도 되나요?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날았고
이마가 깨졌다”

깨트림에서 비롯되는 탄생
헝클어짐에서 비롯되는 사랑
작은 인간, 작은 우주, 작은 나에게서 비롯되는 세계

2004년 중앙신인문학상에 당선되어 등단한 이후 시와 산문, 소설 등 장르를 넘나들며 독자들의 아낌없는 사랑을 받아온 박연준 시인의 다섯번째 시집 『사랑이 죽었는지 가서 보고 오렴』을 펴낸다. 소시집 『밤, 비, 뱀』(현대문학, 2019) 이후 5년 만이자, 등단 20주년이 되는 해에 펴내는 신작 시집으로 특별함을 더한다. 『속눈썹이 지르는 비명』(창비, 2007) 속 삶과 세계를 부정하며 생살을 찢는 아픔을 거침없이 말하던 20년 전 박연준의 화자는, 사랑하는 이들을 상실하며 쓴 뜨거운 슬픔의 시세계에서 “나와 나 사이의 불화를 중재할 수도 있게”(신형철, 『아버지는 나를 처제, 하고 불렀다』 해설에서, 문학동네, 2012) 되었다. 이후 “은밀하고도 섬세한 언어를 통해 뿜어나오는 명랑하고도 발랄한 에로티시즘의 미학”(조재룡, 『베누스 푸디카』 해설에서, 창비, 2017)이라는 평을 받으며 매혹적인 리듬감을 펼쳐보인 그는 “내 시는, 내가 쓰고 당신이 연주하는 음악이다”(『밤, 비, 뱀』 수록 에세이에서)라 말하며 고요한 밤의 자리를 독자와 나누기에 이르렀다.

이번 시집에서는 보다 더 ‘작은 것’에 집중한 화자를 만날 수 있다. 작은 인간, 작은 우주, 작은 나 등 미시적 세계를 잘 들여다보는 것이 시의 일이며, 작은 것이 사소한 게 아닌 본질에 가까운 것임을 드러내는 일이 시인의 책무임을 말하는 듯한 58편의 시편들. “작게 말하면 작은 인간이 된다 (…) 공책을 펼치면 거기/ 작은 인간을 위한 광장/ 납작하게, 죽지도 않고 살지도 않는/ 이름들/ 사소한 명단이 걸어다닌다/ 작은 이름표를 달고 작게 작게”(「작은 인간」)… 그렇게 작아질수록 구별짓기는 무색해지고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동그라미를 그려볼”(「구원」) 수 있을 것이다. “작은 죽음을 사고파는 것/ 작은 죽음을 사랑한다는 것/ 작은 죽음이 우리를 먹여 살리는 것”(「작은 돼지가 달구지를 타고 갈 때」)을 아파할 줄 알게 될 것이다. 그 어떤 큰 것도 작은 것들이 촘촘히 모여야 가능해진다는 것 또한.

목차

시인의 말

1부 이곳에선 깨진 것들을 사랑의 얼굴이라 부른다

흰 귀/ 불사조/ 재봉틀과 오븐/ 나귀쇠가 내 사랑을 지고 걸어간다/ 소금과 후추/ 소설/ 울 때 나는 동물 소리/ 나는 당신의 기일(忌日)을 공들여 잊는다/ 유월 정원/ 마리아 엘레나 1/ 마리아 엘레나 2/ 진눈깨비/ 이월 아침/ 무보(舞譜)

2부 혼자는 외로운 순간에도 바쁘다

작은 인간/ 작은 돼지가 달구지를 타고 갈 때/ 저녁엔 얇아진다/ 택배, 사람/ 주차장에서/ 베개 위에서 펼쳐지는 주먹/ 작은 사람이 키를 잰다/ 다이빙/ 혼자와 세계/ 뜨거운 말/ 수요일에 울었다/ 도착 - 당주에게/ 미운 사람과 착함 없이 불쌍함에 대해 말하기/ 구원/ 경주 1/ 경주 2 - 대릉원에서

3부 말하지 않는 시, 말하는 그림

나는 졌다/ 쫓는 자와 도망가지 않는 자/ 나는 하반신을 잃은 치마/ 우리는 저울을 사랑합니다/ 밤은 파기된 사랑의 도래지/ 욕조/ ‘멍청하고 과격하게’ 연주할 것 /상처 몇 개/ 사랑은 잠들었다/ 청동거울/ 키키, 키키, 키키키

4부 돌멩이가 조는 걸 바라보는 일

초혼(招魂)/ 밤안개에서 슬픔을 솎아내는 법 - 1988/ 이렇게 말하면 어떨까/ 초록유령을 위한 제(祭) - 2022-10-29/ 음악의 말/ 피아노 연습/ 형용사로 굴러가는 기차/ 사랑으로 치솟는 명사/ 안녕, 지구인/ 수업시간/ 시인하다/ 당신에게/ 어제 태어난 아기도 밤을 겪었지요/ 파양/ 우산 사세요/ 빗방울 쪼개기/ 죽은 새

발문 | ‘공들여 추락하는’ 불사조의 눈부심
신미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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